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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확?

이 세상 어느 조직에 가도 정말 꼴보기 싫은 사람 한두명은 있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만나는 이상한 선배, 학교에서 자꾸 숙제 보여달라는 동기,  군대에서 이상하게 정이 안가는 후임 혹은 사이코 선임… 등등. 사회에서 만나면 각 상황에 맞게 대처를 하게된다. 본인보다 아랫 사람이면 그 아랫 사람에게 지옥을 선사.. 혹은 타이르면 되고, 만약 윗 사람이면 그냥 참든지  피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 만날 경우에는 어떡해야 하나? 슬슬 피할 수 도 없고, 지옥을 선사 할 수도 없고, 그저 참다가 참지 못 해 뒤에서 (잘근잘근..)욕을 한다던가 참고 참다가 터져버려서 심하면 교회에 큰 타격을 주게 될 수도 있다.

성경은 분명히 뒷담화는 상종치 말아야 할 죄로 꼽았고(고전 5:11-12), 서로 싸우지도 말라고 했다 (딤후 2:14).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방금 내 뺨을 때린 놈한테 반대편 뺨 까지 대주라고 한다! (주여) 그러면 도대체 우리의 이 불타는 속은 어떻게 달래야 한다는 말인가!

필자도 너무나 부끄럽지만 교회 안에서 싸우기도 해봤고 뒷담화는 셀 수 도 없이 많이 했다 (심지어 이 포스트를 쓰는 동안도 뒷담화를 했음을 고백한다). 싸울 때는 정의의 사도인 양 성지를 지키러 목숨을 바치러 가는 십자군의 각오로 싸웠지만, 죄의 결과는 너무나 쓰고 아팠다.

주님께서 지금 교회들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실까? “주 안에 우리는 하나” 라고 입술 로는 고백하지만 하나 되고자 하는 진정한 노력이 있는가? 왜 같은 주님을 섬기면서 서로 싸우거나 혹은 경쟁 해야 하는 걸까? 물론 많은 건강한 교회들도 있지만, 몇몇 전쟁터 같이 변해버린 교회 생활 속에서 관계 회복을 찾을 수 있을까?

사도바울은 로마서 12:18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어릴때 이 말씀을 들었을 때는 정말 은혜롭다고 느꼈다. “할 수 있거든” 화목하면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면, 내가 할 수 있다고 “느낄때” 화목하면 되는 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내 마음속에 화가 너무 많이 나니까 이 인간과는 화목하지 말아야 겠다’ 라며 화평케 하는 노력을 그만둔 적이 많았다. 심지어는  ‘이런 인간은 용서 안해도 예수님이 혼내지 않으시겠지’ 라는 생각 까지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도바울이 말하는 “할 수 있거든” 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 말씀은 화목 할 수 있는 상황과 화목 할 수 없는 상황을 내 마음이나 기분의 잣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화목을 위해서 노력하기를(strive) 멈추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상황상 화목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모든사람과 화목하기를 노력하라는 이 말씀은 화목하고자 하는 노력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계속 하라는 말씀이다.

꼴보기 싫은 교회 지체와 화목하고자 노력하면서 우리의 터지는 속을 죄의 수단인 사람들과의 뒷담화 혹은 싸움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 불타오르는 마음을 알려드리고 맡겨드리는 몸부림이 있을때 우리의 연약함과 사랑의 한계를 알게 되고, 주님의 사랑의 놀라움과 부활의 회복의 역사를 묵상하며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만 네 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수 있는게 아닐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을때 우리를 싫어하시기를 멈추시고 사랑하기 시작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적이었던 죄인된 우리를 계속해서 사랑하셨고 그 사랑 속에서 화평케 된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를 싫어하실때 조차 하나님은 놀랍고 신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 요한복음 cx.9 발췌)